이 글에는 블러드본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발: 프롬 소프트웨어, SIE 재팬 스튜디오
유통: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PlayStation 4
장르: 3인칭 액션 RPG
출시: 2015년 3월 24일
한국어 지원: 자막 지원
심의 등급: 청소년 이용불가
관련 사이트: https://www.fromsoftware.jp/ww/detail.html?csm=094
프롬소프트웨어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소울라이크의 오리지널 게임들을 개발한 유명한 게임 제작사다. 소울라이크의 명성은 데몬즈소울(2009)에서 출발하여 다크소울 시리즈에서 기본 요소들이 완성되었고 최신작인 엘든링으로 이어졌다. 난공불락의 보스, 까다로운 길 찾기와 지름길, 불확실한 배경 정보 때문에 정확히 알기 어려운 스토리가 이들 게임의 특징이다. 하지만 소울라이크의 핵심은 역시 반복되는 죽음과 화톳불에서의 부활이다. 그래서 어렵고 자주 죽고 특정 지점에서 부활하면 그 게임은 다크소울과 비교되어 비판당할 운명일 수밖에 없다. 더 서지, 코드 베인, 로드 오브 더 폴른, 스타워즈 제다이: 오더의 몰락 등. 이 외에도 내가 모르는 게임들이 훨씬 더 많은데 어쨌든 이들은 무조건 다크소울과 비교당하고 결국 욕을 먹게 되는 슬픈 운명에 처하게 된다.
다크소울과의 꾸준한 비교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은 높은 난이도, 그로 인해 반복되는 죽음과 부활을 소울라이크의 핵심으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죽고 부활하는 요소가 있으면 소울라이크로 분류되고 곧장 다크소울과 함께 재판정에 서게 되는 것 같다. 최근 출시된 P의 거짓이 그렇듯이 잘 받으면 무승부다. 대부분은 본가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결을 받는다. 확실히 프롬소프트웨어의 소울 게임에는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빠져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무엇일까? 무엇이 되었든 정답은 단 하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블러드본은 내 나름의 답을 준 게임이 되었다.
2023년에 처음 블러드본을 하면 아마 충격을 받을 것이다. 30프레임에 최대 1080p 해상도라 좋은 모니터를 사용하면 자글자글한 느낌이 들고 칙칙한 분위기는 남루한 비주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반의 이 충격을 조금만 견디면 칙칙한 분위기는 암울하고 환상적인 고딕 양식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다크한 세계가 궁금해서 도저히 탐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야남이라는 이름의 낯선 도시에서 깨어난 이방인은 한 밤에 거리를 나서게 된다. 닫힌 문 너머의 주민들에게 말을 걸어도 사냥의 밤이라며 상대하지 않고 쫓아낼 뿐이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한 거리에는 무기 든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야수도 있다. 중세 성당을 연상시키는 고딕 양식의 건물로 가득한 이 야남시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크소울이 그렇듯이 블러드본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아주 가끔 얻는 문서와 NPC와의 대화, 아이템 설명문 등을 통해 추측할 수 있지만 그 정보만으로도 충분하진 않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뚝 떨어진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느낌 자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블러드본을 명작으로 만들어 주는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러드본의 모티브가 된 2가지 작품 중 하나의 주제가 미지에 대한 공포이기에 이 점을 플레이어가 생생하게 겪는다면 그건 제작자의 치밀한 의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늑대의 후예들'과 러브크래프트의 코즈믹 호러 장르 소설이 블러드본에 모티브가 된 작품이라 한다. 코즈믹 호러 장르에는 듣도 보도 못한 괴기스러운 모습을 지닌 초월적 존재들이 나온다. 이들은 미지의 존재로서 공포감을 준다. 블러드본에서도 미지의 존재들이 등장한다. 게임을 진행하면 야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미지의 존재들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스토리로 느끼는 공포뿐 아니라 보스전을 통해 체감하는 공포도 있다. 보스들은 대체로 거대하고 강력해 보여서 처음 만나면 공포와 긴장을 느끼게 하며, 높은 난이도로 절망감도 느끼게 한다.
단순히 내용 내용뿐 아니라 플레이 경험으로도 느끼는 공포는 무엇 때문에 가능할까? 게임 속 세상에 대한 촘촘하고도 치밀한 설계, 즉 잘 만들어진 세계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촘촘함은 알수록 감탄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보자. 공격을 당해 체력을 잃으면 손실된 체력바가 바로 줄지 않고 색이 변한 뒤 잠시 후에 감소한다. 감소하기 전 잠깐의 틈에 반격을 시도하여 타격을 가하면 일정 부분 체력을 회복하는 '리게인'이 전투 시스템에 있다. 리게인 덕분에 블러드본의 전투는 좀 더 과감하고 신속하며 공격적인 성향이 되었다. 그런데 제작진은 단순한 전투 시스템 뿐으로 두었을 뿐 아니라 여기에 삶에 대한 의지의 표명이라는 의미도 부여했다. 이 의미는 게임의 전체 내용과 분명하게 관련이 있다. 게임 안에는 이런 숨겨진 설정들이 굉장히 많다. 그러니 이런 정보들을 모아 전체의 그림을 짜 맞춰 보면 블러드본의 세계관이 아주 치밀하게 설계되었음을 알고 감탄하게 된다.
세계관에 몹시 공을 들인다는 점은 최신작인 엘든링만 봐도 알 수 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원작 소설 작가인 조지 R.R 마틴이 엘든링 제작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설 완결을 해야 할 바쁜 영감님이 왜? 하지만 블러드본을 해 보고 나서 이해가 되었다. 블러드본의 훌륭한 세계관 덕분에 대단한 모험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꼭 해봐야 할 게임은 말이 안 된다고 블러드본은 예외다. 시대가 변해도 남을 마스터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