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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그 테일 레퀴엠 - 오히려 삶이란 이 쪽에 가깝지 않을까?

by 파트타임게이머 2023. 12. 24.

스포일러 주의 - 본문에는 플레이그 테일 레퀴엠과 전작 이노센스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알기를 원치 않으시면 더 읽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개발 : 아소보 스튜디오
유통 : 포커스 엔터테인먼트, H2 인터렉티브
플랫폼 : 윈도우즈, 플레이스테이션 5, 엑스박스 시리즈XS, 닌텐도 스위치
장르 : 액션 어드벤처, 잠입 액션
출시 : 2022년 10월 18일
한국어 지원 : 자막 지원
심의등급 : 청소년 이용불가
관련 사이트 : https://www.asobostudio.com/games/plague-tale-requiem


플레이그 테일 레퀴엠 리뷰를 검색해 보면 엔딩에 대한 욕이 많다. 이해한다. 온갖 고생은 다 했는데 희망은 1도 없이 최악의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전작 '플레이그 테일 이노센스'도 고통스러운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앞날은 더 나아지리라는 미약한 희망을 안겨주는 엔딩을 선사했다. 그에 비하면 레퀴엠의 결말은 참혹하다. 나 역시 플레이 하는 내내 주인공 남매의 행복을 기원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은 실제로는 레퀴엠의 엔딩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다. 잘해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오늘 이야기를 하려면 전작인 이노센스부터 레퀴엠까지의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한다. 이노센스는 백년전쟁이 끝난 프랑스의 기옌이라는 지방을 배경으로 한다. 흑사병이 유행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던 시절이다. 주인공은 드 룬 가문의 딸인 아미시아와 동생 휴고다. 평화로웠던 가문은 이단심문관의 공격을 받아 하루아침에 멸문당한다. 휴고에게는 저주인 모반이 있는데, 유전병처럼 가계를 통해 전해지며 악화되면 결국 병의 숙주[각주:1]를 죽게 한다. 그런데 모반은 숙주에게 쥐 떼를 조종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병이 진행될수록 그 힘도 강해지고 최후에는 세상을 멸망시키게 된다. 이단심문관은 이 힘을 노렸다. 남매가 추격을 피하고 맞서는 과정이 이노센스의 스토리다. 그 와중에 동료들이 죽는 비극을 겪기도 하지만 결국 최종 빌런인 대심문관을 물리치게 된다.

한동안 아미시아와 휴고는 잘 지냈다. 그러던 중 어느 성을 탐험하며 놀다가 그곳 사람들에게 도적으로 오인받아 죽을 위기에 몰리게 된다. 휴고가 모반의 힘을 사용한 덕에 위기는 벗어났지만 다시 악화가 시작되고 쫓기게 된다. 그래서 치료할 방법을 찾아 나서면서 레퀴엠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처음에는 연금술사 집단인 오더의 마스터 바우딘에게 치료를 맡기지만 실패한다. 휴고는 꿈속에서 어느 섬을 보았는데 그곳에서 치료될 수 있을 거라 믿게 된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라쿠나라는 이름의 섬에 도착하여 단서를 찾아봤지만 아주 오래전 모반의 숙주였던 아이가 죽어있을 뿐이었다. 과거에도 오더는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해 숙주를 감금했는데, 보호자와 격리된 나머지 정신적으로 심히 불안정해져 폭주했고 그로 인해 유스티니아스 역병이 일어났었다는 절망적인 진실만 알게 되었다. 꿈조차 모반이 일으킨 함정임을 깨닫고 나서야 안전한 곳에서 안정된 마음으로 지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아미시아와 휴고는 산 속에 있는 가문의 별장으로 가려했지만, 라쿠나 섬의 영주가 강제로 휴고를 양자 삼으려 했고 이 과정에서 남매의 어머니가 죽게 된다. 납치된 휴고는 누나가 죽은 줄로 알고 절망한 나머지 모반의 최종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각주:2] 아미시아는 모반에 직접 들어가 휴고를 만났지만 자신을 죽이는 수밖에 없다는 휴고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돌팔매를 휘둘러 비극적 결말을 맺게 된다.[각주:3]

바우딘의 잘못된 치료는 악화를 불러오고 결국 쥐떼 재앙으로 이어진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어느날 당신의 가족이 자해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병원 의사이자 『죽음을 배우는 시간』 등의 저서를 출간하며 활발한 연구 및 저술 활동을 이어온 저자(김현아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의)는 화목한 가정에서 명랑하게 자라는 줄로만 알았던 딸이 남몰래 자해를 해왔고,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는 엄마이자 의사인 저자가 정신질환을 앓는 딸을 보살피고, 가족으로서 삶을 함께 살아내고자 겪어온 숨 가쁜 여정의 기록이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밤바다를 헤엄치는 심정으로 딸과 함께해왔던 지난 7년간의 투병 과정을 담담하게 회고하며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 그리고 마음의 문제로 고생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과 위안을 전한다. 더불어 딸의 아픔을 헤아리기 위해 섭렵한 수많은 연구와 기록을 소개하며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과학적 이해를 넓히고,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과 대화하는 법, 자해·자살 시도를 마주했을 때 대처하는 자세, 병원을 선택할 때의 유의사항 등 환자 가족으로서 실제 겪은 바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조언을 담았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가족을 둔 이는 물론,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싶은 독자에게 두루 권한다.
저자
김현아
출판
창비
출판일
2023.09.01

엔딩에 가까이 갔을 때 우연히 책 한 권을 읽었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김현아 저). 저자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딸의 어머니다. 책에는 환자의 자살보다 더 나쁜 사건은 가족이 환자를 살해하는 일이라고 나온다. 내게는 이 내용이 아미시아와 휴고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졌다. 아미시아는 동생을 낫게 해야 한다는 목표 하에 온갖 고통을 겪으며 때로는 미칠 듯한 상황까지 내몰렸지만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어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중증 질환 환자나 정신질환 환자를 돌보던 가족이 살해한 사건을 뉴스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그들의 행위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전 지독한 고통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해 보자. 어떤 병은 환자와 주변 사람의 마음속에 한 줌의 희망도 남기지 않고 절망과 고통을 때려 붓는다. 견딜 수 없게 혹독한 고통은 죽는 길 외에는 이 고통이 끝날 방법이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그래서 남매의 이야기가 중증질환이나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과 그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쿠나 섬으로의 항해. 희망이 있으리라 믿었던 곳에 언제나 희망이 있는 건 아니다.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지만 정신 질환은 여전히 공개하기 어려운 병이다. 아미시아 남매도 모반을 비밀로 한다. 알려지면 위험에 처할 수 있기에 그렇다. 중간에 등장하는 조력자 소피아는 신뢰할만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반에 대해 알면 자신들을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비밀로 한다. 환자와 가족들도 누군가 병에 대해 알게 되면 현실적인 불이익을 받거나 소외당할 것을 염려한다.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증상의 고통뿐 아니라 어디에도 말할 곳이 없다는 고립의 고통이 더해진다. 아미시아도 마찬가지다. 동생의 병을 고치고 적들과 맞서 싸우려면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압박이 최고조에 달할 때는 호흡과 현실감각에 문제가 생긴다. 그러다 어떤 때는 누구와도 싸워 이길듯한 만용을 부리다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널 뛰는 감정상태를 보고 있으면 휴고보다 아미시아가 더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습은 심한 부담감에 짓눌려 살다가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유명인들의 이야기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해적 소피아는 남매와 함께 위험을 무릅쓴다.

사람들은 병의 호전과 악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책의 저자는 주변 환경과 무관심이 마음의 병을 악화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 유해한 사회 또한 정신건강에 해롭다고 말한다. 여러 등장인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휴고의 모반을 악화시켰다. 가장 처음 치료를 시도했던 오더의 마스터 바우딘은 휴고를 가족과 격리시키고 강압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비록 치료를 위한 행위였다고 하나 휴고가 원치 않는 방식은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유발했고 악화되었다. 병사들의 위협도 있었다. 공포는 각성 수준을 심각하게 높이고 신경계를 과하게 자극한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긴장감이 상당했다.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휴고는 쥐떼를 부리는 힘을 사용하는데 도움이 되면서도 괜찮을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라쿠나 섬의 백작 부부는 남매를 환대했지만 알고 보니 그들이야말로 가장 유해한 인물이었다. 학대를 경험하고 불임이 된 백작 부인은 휴고를 양자 삼기 위해 남매의 모친을 살해했고, 백작은 부인을 위한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휴고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던 이들은 결국 모반을 최종 단계까지 진행시키고 만다.

너무 강한 누나는 때론 해로울 수도 있다는...

누구보다 휴고를 사랑하는 아미시아도 악화에 일조했다. 휴고는 라쿠나 섬 지하로 가던 중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고 중단하고 돌아가자 했다. 그러나 아미시아는 계속 가야 나을 수 있다고 휴고를 밀어붙였다. 결국 지하에 있던 쥐떼를 깨우게 되고 백작 부부가 휴고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강제로 양자를 삼으려고 시도하게 된다. 아미시아는 이런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다. 다만 휴고에 대한 애정과 집착, 공포가 뒤섞인 나머지 오판을 내렸던 셈이다. 환자를 이해할 지식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으며 두려움에 사로 잡히면 누구나 환자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상처를 주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지만 희망사항일 뿐이더라.

굳이 이런 엔딩으로 끝을 내야 했을까? 너무 힘들었으니까 해피 엔딩하면 안 될까? 엔딩은 감정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국 이게 더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하니 수긍이 가기도 했다. 인생에 좋은 일이 있다면 나쁜 일이 있는 것도 당연하고 어떨 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정말 안 좋은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잘해 보려 한 일이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어쩌면 안 좋을 확률이 좀 더 높아 보인다. 진짜 이 빌어먹을 세상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다. 그래서 휴고의 죽음 이후 아미시아의 선택이 인상 깊었다. 극심한 고통 끝에 아미시아도 죽음을 택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휴고에 대한 슬픔을 마음에 간직하고 모반이 불러올 재앙을 찾아내어 막기 위해 길을 떠난다. 아미시아는 그러한 삶을 선택했다. 하루하루 삶을 살아내야 할 우리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각주:4]


 

  1. 숙주는 병에 걸린 사람, 게임에서는 휴고를 일컫는다. [본문으로]
  2. 섬에서 보았던 숙주와 유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본문으로]
  3. 아미시아를 조작해서 죽이지 않고 시간을 끌면 동료인 루카스가 휴고에게 석궁을 쏜다. [본문으로]
  4. 엔딩 크레딧 이후 쿠키 영상에는 현대식 병원을 배경으로 아기의 팔에 모반이 뻗어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어쩌면 모반의 이야기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해당된다는 뜻이 아닐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