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Something We Made
유통: Something We Made, popagenda
출시 플랫폼: 닌텐도 스위치, 스팀, 에픽게임즈, 엑스박스 PC, 엑스박스 시리즈 XS, 엑스박스 원, 플레이스테이션5
장르: 퍼즐, 어드벤처
출시일: 2021년 9월 17일
한국어 지원 여부: 공식 한국어 자막
심의등급: 전체이용가
홈페이지: https://www.somethingwemade.se/toem/
업무 중에 심리적 소진 현상, 즉 '번아웃'을 설명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이해하기 쉽게 인간을 스마트폰에 비유한다. 스마트폰을 계속 사용하고 게임 같은 무거운 앱을 돌리면 금방 배터리가 바닥나기 때문에 신경 쓰고 충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용하지 않아도 배터리는 서서히 소모된다. 즉시 알람을 보내기 위해 데이터 통신을 늘 유지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보이지 않는 작업' 같은 게 사람에게도 있다. 지속적인 고민이나 끊기 어려운 걱정 또는 생각 같은 것들이다. 릴스나 유튜브 숏츠처럼 계속 보게 되는 감각적 자극들도 모르는 사이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결국 현대인들은 눈을 뜨고 있는 내내 정보를 처리하느라 잔뜩 긴장해 있게 되고, 이 긴장 때문에 잠들기도 쉬기도 어렵게 된다. 2000년대 초반 힐링이 유행했고 이제는 흔히 쓰는 단어가 됐지만 우리 환경은 좀 더 킬링에 다가선 것 같다.
쉼 없는 작동으로 인한 고통이 킬링이라면 잠시 멈추고 여유를 갖는 힐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TOEM은 이런 힐링의 기조에 잘 맞는 게임이다. 어느 정도로 잘 맞냐 하면, 편안한 감각이 지속되어 끝내 졸기도 했다. 엔딩을 보고 싶어 매일 꾸준히 했기 때문에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게임은 아니었다. 단지 TOEM이 편안함의 극(?)에 달한 나머지 나를 이완시켰던 덕분이라 말하고 싶다.
흑백의 그래픽은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했다. 손으로 정성 담아 그린 그린처럼 미려하고 보기 좋았다. 주인공의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처럼 생겨서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을 대놓고 보여주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 속 세상에는 벤치나 피크닉 의자, 선베드처럼 쉬어갈 수 있는 사물들이 많이 있었다. 성질 급한 한국인인지라 몇 번 앉지는 않았는데 클릭 실수로 앉게 되었을 때는 카메라 뷰파인더 너머로 게임 속 세상을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하니 마치 여행객이 된 것처럼 한결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미끄럼틀에서 내려오거나 흔들리는 그네를 타면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게임은 멍 때리고 한가롭게 굴 다양한 요소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게 스칸디나비아 감성인 것 같다.
여정 중의 미션을 해결하다 보면 결국 TOEM을 만나게 된다. TOEM이라는 녀석의 사진을 찍으면 별 거 없이 산을 내려와 집으로 간다. 허무한 결말일 수 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볼만했다. 제작진의 이름이 올라가는 크레딧 양 옆으로 내가 찍었던 사진들이 보이고 있었다. 찍을 때는 잘 찍었단 생각이 안 들었는데 음악과 함께 다시 보니 나름 멋이 있고 게임 속 여행의 추억도 생각나고 좋아 보였다.
'그땐 별 거 아닌 것 같았는데 지나고 보면 아름다웠네. 이게 인생인가.'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직업 때문에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대단할 거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의 인생 이야기를 잘 들어 보면 멋진 순간들과 감동을 주는 대목들이 있다. 그리고 힘껏 살아가는 의욕에 감탄하게 된다. 유명하고 대단해 보이는 것들에 사람들은 흥미를 가지지만, 그것들 모두가 유명해서 대단해 보이는지 정말 대단해서 유명해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좋아 보이도록 연출된 쪽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주어진 삶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어떠한 삶도 한 편의 멋진 드라마 같지 않을까. TOEM의 크레딧을 보면서 소소함의 아름다움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