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세상을 감지하는 통로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접한다. 여러 감각 기관이 있지만, 그중 시각의 영향력은 독보적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에게 6개의 감각기관인 6근(六根)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안이비설신의(눈, 귀, 코, 혀, 몸, 마음)'로, 시각을 담당하는 눈이 첫 번째에 자리 잡고 있다. 굳이 불교 이야기를 들추지 않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셜 서비스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라는 점이 시각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이제 '본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의 도구를 넘어 하나의 욕망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비디오 게임에서 시각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시각의 중요성은 비디오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디오'라는 이름 자체가 시각적 자극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음악이나 음향도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화면을 통해 전달된다. 소리를 끄고도 어느 정도 게임을 할 수 있지만, 화면이 없다면 게임 자체가 불가능하다(의도적으로 화면을 사용하지 않는 게임은 예외다). 플레이어의 조작은 화면 속 움직임으로 이어져 게임 세계에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몰입감을 강화하기 위해 게임 그래픽은 현실에 가깝게 발전해 왔고, 사람들은 게임을 평가할 때 '그래픽'을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다.
드래곤 에이지가 던진 의문
2009년 11월 3일에 출시된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을 약 15년이 지난 2024년 9월에 클리어했다. 그전에도 몇 번 시도했으나 해결할 수 없는 오류 때문에 끝까지 진행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마침내 이야기를 완주할 수 있었는데, 이 게임은 그래픽에 대해 화두를 던져 주었다.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은 출시 당시에 상당히 훌륭한 그래픽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박스 형태의 버추얼 파이터 2를 처음 보고 진짜 사람 같다며 감탄했던 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은 낡고 조악해 보인다. 그래픽만 봤을 때는 손대고 싶지 않았지만, 게임을 시작하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재미있는 요소가 많았다. 첫 번째는 개성 넘치고 생동감 있는 등장인물들이었다. 동료 중 드워프 전사인 오그렌은 입만 열면 동료들과 투닥거리고 여성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자주 한다. 그러다 역공을 당하기도 하고, 잘 챙겨주면 츤데레처럼 좋아할 때도 있어서 티키타카를 보는 재미가 있다. 동료들과 함께 다닐 때면 서로 다양한 대화를 나누는데, 각자의 성격과 생각이 잘 드러나는 순간이 많았다. 인공지능 없이 대사만으로 이런 생동감을 만들어낸 글의 힘이 대단했다.
두 번째는 낡았지만 훌륭한 그래픽이었다. 텍스처의 질감이나 광원은 최신 게임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 하지만 특정 장소들은 고유의 분위기가 잘 살아있었다. 말하자면 디자인과 미술의 승리라고 할까? 드워프의 도시와 땅굴을 걸을 때면 웅장함이 확실히 느껴진다. 시각적 요소들이 이런 느낌을 전달하도록 세심하게 계획되었고, 그 의도가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하는 사람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을 하는 사람의 경험이다. 아무리 멋지고 화려한 그래픽이라도 플레이어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좋은 게임 그래픽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CPU 내장 그래픽으로도 구동 가능한 수준이더라도, 의도한 경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플레이어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면 훌륭한 그래픽이라 평가할 수 있다. 요즘은 지나치게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게임들만 주목받고, 최적화에 실패한 게임들이 많다. 그래서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을 하고 나니 더욱 아쉬움이 든다.
게임 정보
원어 제목 | Dragon Age Origins |
개발 | 바이오웨어 |
유통 | 일렉트로닉 아츠 |
출시 플랫폼 | 윈도우, 엑스박스 360, 플레이스테이션 3 |
장르 | 롤플레잉 |
출시일 | 2009년 11월 3일 |
홈페이지 | https://www.ea.com/ko-kr/games/dragon-age/dragon-age-origins |
심의등급 | 청소년 이용불가 |
한국어 지원 여부 | 유저 제작 자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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