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학원이란 게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오락실이 먼저였는지, 컴퓨터 학원이 먼저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오락실이 먼저인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어렸을 때 컴퓨터 학원이란 것이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되겠지만 그랬다. 80년대 후반의 컴퓨터란 도통 쓰기 어려운 녀석이었다. 지금의 윈도우처럼 마우스를 클릭하고 드래그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모든 걸 타이핑해야 했고 명령어를 입력해야 했다. 그래서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학원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학원을 다녔다. 내면의 어둠을 자극했던 오락실과 컴퓨터 학원은 10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내가 게이머가 될 환경은 풍부했다. 맹자의 어머니가 왜 이사를 다녔는지 알 것 같다.
기술은 놀이에 활용된다.
용도가 무엇이 되었든 사람들은 최신 기술을 놀이에 활용한다. 컴퓨터에 이미 게임이 있는데 말해 무엇하겠나.
처음 학원을 갔을 때 컴퓨터는 바로 이거였다.
8비트 컴퓨터인 아이큐2000은 키보드와 일체화된 본체에 게임팩을 꽂아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 컴퓨터에서 게임 기능만 살려 콘솔 게임기로 출시한 제품이 있으니 바로 대우전자에서 만들었던 재믹스다.
게임팩이 없으면 BASIC에 이미 있는 구문을 입력해서 뱀 게임을 실행시키기도 했다. 어떻게든 게임을 하고 싶어서 머리를 쓰는 곳이 컴퓨터 학원이었다. 하라는 컴퓨터 공부는 안 하고...
그래도 컴퓨터는 잘 쓴다.
조금 더 열심히 학원에서 공부했으면 언어를 익혀서 프로그래밍 실력을 갖췄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코볼, 어셈블리 같은 이름만 아는 언어들은 너무 어려웠다. 대신 컴퓨터 활용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서 결국 컴퓨터를 잘 쓰고 고장이나 문제에도 잘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학원 다니며 잿밥인 게임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그게 그렇게 헛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뭐든 배우려면 흥미를 느낄 구석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게 내겐 게임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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