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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믹 하트 - 당신은 소련을 기억하십니까?

by 파트타임게이머 2023. 8. 5.

스포일러 경고! 아토믹 하트와 바이오쇼크 스토리에 대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발
문드피쉬
배급
포커스 엔터테인먼트
출시일
2023년 2월 21일
플랫폼
Windows, 플레이스테이션 4&5, 엑스박스 원&시리즈X(게임패스 데이원)
장르
FPS, 액션RPG
등급
청소년이용불가
한국어 지원
공식 한국어 지원
나의 클리어 시간
44시간 45분

 

나는 소련을 기억한다. 어렸을 때 저 북쪽의 나라는 러시아가 아니라 소비에트 연방이었니까.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시작하여 옐친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연방은 해체되었다. 당시 사건은 어린 내게도 굉장히 큰 일로 기억에 남는다. 냉전체재의 끝이었으니까.

 

그 때의 기억을 가지고 접한 아토믹 하트는 소련이 붕괴되지 않았다는 대체 역사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내가 기대한 소련의 어떤 독특한 분위기를 게임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어떤 붉은 맛(?)을 몽골 울란바토르시에서 경험했을 때의 그런 느낌을 아토믹 하트는 전해주고 있었다.

 

출시 당시 기대작이었던 몇몇 AAA 게임들은 다들 최적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토믹 하트의 최적화는 훌륭했다. 여러 면면의 완성도도 좋았다. 아트는 특히 훌륭했다. 아르데코 양식으로 훌륭했던 바이오 쇼크에 비견할만하다고 본다. 초반 전투는 탄약 부족으로 근접전만 할 수 있어 다소 지루했지만 무기 종류가 늘고 업그레이드를 하게 되면서 후반이 될수록 즐길만 하게 되었다.

초반부 이 장면의 노래를 듣고 심수봉 선생님을 떠올리면 당신은 나랑 비슷한 연배일 것이다.

 

굉장히 진보한 과학 문명이라는 배경 설정답게 공상 과학적인 느낌이 잘 들면서도 동시에 기괴함이 함께 표현되었다. 이 점을 가장 잘 대표하는 등장인물이 바로 쌍둥이 로봇이다. 여성형 로봇인 이들은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지만 출현할 때마다 어딘가 모를 위압감과 섬뜩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극도로 발전한 과학 기술은 편리하지만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 않냐는 의문을 갖게 하고 싶었다면 아토믹 하트의 아트는 성공이라 평가하고 싶다.

게임 초반 전투는 다소 힘들다. 탄약이 부족해 근접전을 해야 하고 로봇은 꽤 강력하다. 만만하게 다가서면 금방 체력이 줄어든다. 곳곳에 위치한 감시 카메라는 적들을 불러 모으기에 조심해서 다녀야 한다. 다행히 게임을 진행하면 탄약 부족은 해소되고 무기 종류와 특수 능력이 늘어나 수월해진다. 마냥 학살하는 느낌은 아니고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전투할 정도가 된다. 무기 사용 시 손맛을 좀 더 느낄 수 있도록 조작감이 좋았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결말까지 전투는 지루함이 없이 양호했다.

퍼즐은 주로 문을 여는 것과 연구소를 통과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특히 문 열기에 집착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개인적으로 어렵진 않았으나 인터넷의 다른 평가를 보면 짜증 난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굳이 퍼즐은 없었어도 될 것 같다. 아니면 좀 더 흥미롭게 만들거나.

 

스토리 이야기를 해 보자. 러시아가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소련으로 연합하여 고도의 과학 기술을 발전시킨 대체 역사 세계가 배경이다. 주인공 세르게이 네차예프(코드네임 P-3)는 상관이자 뛰어난 과학자인 세체노프의 지시에 따라 바빌로프 복합단지라는 시설에 갔다가 갑자기 일어난 로봇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체노프는 콜렉티프 2.0이라는 신경망 연결 시스템을 통해 인류를 연결시키고 진보하게 만들려고 한다. 콜렉티프 2.0은 로봇을 원격으로 제어하게 해 주고 지식을 공유하게 해 준다고 하지만 실은 개인의 자유의지를 박탈하여 집단체제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세체노프는 인류를 말초적인 즐거움만 쫓는 어리석은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강제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대중을 자신의 이상으로 끌고 가려한 것이다. 이상을 외치지만 그 이면에 개인의 욕망이 자리한 셈이다.

 

이상을 좇는 독재자라는 점에서 바이오쇼크의 앤드류 라이언을 떠올리게 한다. 라이언은 극단의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에 사상의 차이가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둘은 굉장히 닮아 있다. 라이언은 억압에 저항하며 모든 자유가 허락된 해저 도시 랩처를 세운다. 그러나 사회를 유지할 최소한의 법과 규칙마저 만들지 않을 정도로 자유를 강요했다. 결국 여러 문제가 생겼고 내전을 겪게 된다. 그런데 내전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통제할 물질을 사람들에게 사용하고 랩처는 지옥이 되어 버린다.

 

통제된 사회와 자유로운 사회라는 이념의 차이는 있지만 둘은 모두 이상 사회를 추구했다. 그러나 자신의 아집을 대중에게 강요했다는 공통점 때문에 두 게임 속 세상은 모두 참극을 겪게 되었다.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게임 속 가공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을까? 여론과 대중을 무시하며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리더는 작게는 회사나 단체 안에서, 크게는 국가 단위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몇몇 비극이 이미 일어났고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을 하며 게임을 플레이해 나가며 더욱 오싹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토믹 하트는 바이오쇼크라는 명작의 훌륭한 정신적 후속작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엔딩이 다 깎아 먹었다. 제작진이 결말에 반전을 너무 주고 싶었던 탓일까. 두 가지 엔딩 중 한 쪽에 숨겨진 빌런이 등장한다. 콜렉티프 2.0은 실현되지 않고 로봇들의 공격도 멈춰 난장판은 진정되지만 세체노프는 그냥 죽어 버려 갑자기 비중이 공기처럼 희미해진다. 주인공은 그 숨겨진 빌런에 의해 쓰러지고 죽는 것처럼 묘사된다. 고생고생하며 끝까지 왔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보람 없는 엔딩뿐이다. 러시아 소설들도 입맛 쓴 결말이 많던데 제작진이 러시아인이라 이 게임 역시 그런 것일까. 그동안의 이야기와 엔딩이 너무 따로 노는 느낌이라 허무했다. 재미있었지만 이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