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는 뒷산이 있다. 높진 않고 야트막해서 잠자리를 잡거나 가을에 밤을 주우러 가던 곳이었다. 9살 때쯤이었나. 그 산의 입구에 오락실이 생겼다. 바깥에 '지능개발'이라는 문구는 대한민국 모든 오락실들의 국룰이었다.
게임은 어린 나를 매료시켰다. 보글보글, 더블 드래곤, 아르고스 전사, 방구차, 미스터 손손, 카발, 혼두라, 남극탐험 등등. 고전이 된 수많은 명작들은 어린이들을 모험의 세계로 인도했고 유혹에 빠진 이들은 너나없이 동전을 게임기계에 바쳤다. 모험에는 돈이 필요해서 원하는 만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잔돈을 모아 두는 저금통에서 돈을 빼서 썼다. 모를 줄 알았지만 그럴 리가. 애를 키워 보니 이제 안다. 부모는 알아도 모른 척할 때가 있다는 것을. 발각된 어느 날 죄를 추궁당했고 어머니와 경찰서에 갔다 왔다. 그 이후로 거짓말을 절대 안 하는 아이가 되었을 리는 없지만 오락실에 가고 싶으면 솔직하게 말하고 허용되는 만큼만 받아서 했다.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게 된 이후는 알아서 했고. 아무튼 아이는 잘 자라서 멀쩡한 사회인이 되었고 플스5, 엑시엑, 닌텐도, PC를 갖추고 사는 아저씨 게이머가 되었다.
이제 오락실의 역할은 PC방이 떠맡았다. 환경은 변했지만 게임을 놓고 벌어지는 보호자와 자녀의 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게임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있는 사람이 결혼하여 자녀를 키우다 보면 게임을 놓고 부부끼리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보호자와 자녀의 갈등은 한 때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에서 근무했던지라 많이 보았고. 그 때는 부모와 자녀가 대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원하던 방송 프로그램을 최근 만났다. OGN에서 방영한 교양 프로그램 '우리아이 게임사용 설명서'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단순히 게임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게임 자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다룬다. 출연진의 고충 토로와 대화도 재미있다. 방송을 재미있게 잘 만들어서 교육적 목표가 아니더라도 그냥 보기에도 좋다. 게이머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주제들을 다루기에 흥미가 있을 것이다. 주변에 게임으로 갈등이 있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